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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반기 취업시즌을 실패로 보내고 심신의 안정을 찾으며 보건소 계약직으로 근무했을 때의 일이다. 업무는 감염병과 관련된 민원을 처리하고 지원이 필요한 계층에겐 행정적 지원을 검토하는 일이었다. 코로나가 완전 종식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내 업무는 주로 코로나와 관련된 업무였다. 코로나통합시스템을 활용해 업무를 봤지만, 민원인과 맞닿아있는 최전선에서 근무했기에 민원 전화는 피할 수 없었다. 우리는 지침 내에서 업무를 봤기 때문에 지침이나 정책이 변경되면 업무환경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문제는 확진자가 다시 증가세로 전환되던 7월에 발생했다.

 

5배 증가한 전화 업무

   어느날 갑자기 오전에 발생하는 민원전화가 급증했다. 당시 수치화에 중독돼서 팀 내 모든 업무를 통계내고 있었는데, 점심시간에 확인해 보니 무려 5배가 증가했다. 물론 절대적 수치가 적었고, 확진자 증가세에 따른 자연스러운 상황이라 판단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전화량은 줄지 않았고 열흘간의 데이터가 쌓이면서 이상함을 느꼈다. 확진자 증가폭에 비해 민원 전화의 수가 너무 급하게 증가한 것이다. 확진자는 열흘간 점진적으로 증가해 최종적으로 1.8배가 증가한 반면 전화는 한 번에 급증했던 것이다. 처음엔 민원 내용을 살펴봤다. 민원의 구분은 이전 기간과 비교해 변화가 없었다. 대부분이 크게 봤을 때 이전과 다를 바 없는 내용이었다. 그때까진 코로나 보도를 많이 하는 미디어의 영향이라 생각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일주일이 더 흐르고 확진자 증가세가 커지자 오전 업무에 로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팀 전체가 바빠졌다. 그렇지만 팀원들은 별 관심이 없었다. 워낙 난이도가 높지 않은 업무기도 하고, 이전이 여유로웠다 보니 다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숫자보다 내용에 집중을 했더니

   하지만 난 조금 더 꿀을 빨고 싶었고 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팀 전체의 민원일지를 취합해서 내용을 조금 더 구체화했다. 그러자 유독 격리참여여부를 확인하는 전화가 많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처리 결과를 살펴보니 표현만 다를 뿐 대부분이 격리 참여 상태임을 확인해 줬다는 내용이었다. 즉, 대부분이 전날 "격리 참여"로 응답한 확진자라는 것이다. 숫자에 너무 심취해 민원의 "구분 값"만 확인하고 세세한 내용까지 살피지 못했다.
   바로 담당 주임님께 "격리 참여자"를 대상으로 한 정책에 변동이 있는지를 확인해달라 요청드렸다. 돌아온 답변을 듣고 나는 다시 오전 근무시간에 카페를 가서 커피를 사 올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7월부터 새로운 민원창구안내를 위해 격리 참여자에게 아침 9시에 문자를 발송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문자 내용을 보고 난 모닝커피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 내가 찾은 문제의 원인은 바로 문자의 첫 두줄이었다.

 

우리의 뇌는 유사한 정보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당시 내가 근무한 보건소에서는 코로나 확진자에게 총 2번의 안내문자가 발송됐다. 첫번째 모든 확진자에게 발송하는 확진안내와 자기기입식 작성 안내 문자, 두 번째 다음날 격리참여자로 등록되었음을 안내하는 문자. 여기서 두 번째 문자가 리뉴얼되면서 첫 두줄이 첫 번째 문자와 유사해진 것이다. 이를 확인하고 내가 세운 가설은 다음과 같다. 첫 두줄 내용이 비슷해 확진자들은 본인이 전날 보건소에 제대로 등록되지 않았다 판단하고 바로 전화를 했을 것이다.
   나는 담당 주임님께 문자 상단에 격리참여자에게 전송되는 문자임을 안내하는 문구를 한줄 추가해 달라 요청드렸고 바로 적용해 주셨다. 그리고 다음날 오전 민원 전화는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가설은 맞았고 솔루션도 작동했다. 물론 정책 변화를 바로 알았다면 대응이 빨랐겠지만, 본문 내용 자체가 완벽하게 다른 문자를 보고 그런 오해가 발생하리라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시 찾은 카페 타임

   이후 팀원들이 조금은 여유를 갖고 오전 업무를 처리할 수 있었고 나 또한 모닝아아를 다시 10시 반에 사러갈 수 있었다. 이 경험을 통해 얻은 경험은 두 가지다.

 

1. 사람은 짧은 내용을 확인하더라도 첫 두줄(첫 이미지) 이후 나머지는 스키마 하는 경향이 있다. 즉, 상단 이미지의 중요성
2. 숫자로 일반화해서 문제를 바라보지 말아야겠다.


   성취감이 있었던 경험이라 쉽게 잊지는 않을 경험이었다. 보건소 근무 경험은 나에게 꽤 다양한 인사이트를 줬는데, 이후에 시간이 나면 하나씩 적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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